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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2017년 장편소설 파친코는 미국에서도 올해의 책 10으로 선정된 유명한 작품인데요. 오늘은 이 책을 읽고난 느낌과 인상적인 구절들에 대하여 포스팅해보겠습니다.

 

Ι 전체적인 감상평

소설 '파친코'는 일본으로 간 조선인들의 4대에 걸친 삶을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의 시대를 배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재일교포들의 일본에서의 차별로 인한 고난과 애환을 그리고 있지만 이는 비단 일본과 재일교포들만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사회가 늘 드러내는 추악함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차별의 굴레를 짓는 대상은 인종과 종교, 하다못해 살고 있는 동네가 다른 이유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것이고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역사의 가해국와 피해국이 바뀌었더라도 즉 역사와는 반대로 조선이 일본을 침략한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일본인들은 분명히 당시의 조선인들처럼 차별을 받을 것이란 것이다. 이것이 추악한 인간과 사회와 국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를 역사가 증명한 사례는 많지만 그다지 멀리 갈 필요도 없는 게 광복 후 고향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온 동포들을 같은 조선인임에도 '변절자'로 취급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조선인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4대에 걸친 이른바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정치이념이나 신념조차도 한낯 인간의 이해관계를 좇은 산물임을 말하고 있으며 끝끝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는가?

 

베스트셀러답게 속도감 있는 전개와 명확한 서사 그리고 작가의 시각을 드러내는 적절한 대화들이 작품 속으로 빨려들듯 흡입력을 가지고 있으며 책을 덮고 나서는 답답해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핵심이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ΙΙ 인상깊은 장면과 문장들

 

 

"자신의 조국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어디를 가도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두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

-성 빅토르 

 

 

"조선인 집단들 말인데 거기 책임자들은 단지 사람들일 뿐이야. 돼지보다도 똑똑하지 못한 인간들이지. 우리가 먹는 그 돼지들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점을 명심해 둬. "

 

"나는 좋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야. 돈을 잘 버는 사람이지. 모든 사람이 사무라이 정신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를 믿는다면 이 나라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걸. 천황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아."

 

"하지만 이건 알아둬. 그 공산주의자들은 널 돌봐주지 않아.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지. 그들이 조선을 생각한다고 믿는다면 넌 정신이 나간 거야."

 

 

"넌 내 밑에서 충분한 음식과 돈을 모았어.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거야. 그게 정상이지. 애국주의는 신념일 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신념에 빠지면 자신의 이익을 잊어버릴 수 있어.  책임자들은 신념에 지나치게 빠져든 사람들을 착취할 거고, 넌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어, 너 같은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은 백 명이 모여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이제는 소련과 중국, 미국이 엉망진창인 작은 우리나라를 놓고 싸우고 있어, 네가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은 잊어버려."

 

 

"완쾌되도록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비싼 약값을 받고 고통을 아주 조금 줄여주고는 요셉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더욱더 혐오하게 만드는 게 의사라는 작자들이었다."

 

"요셉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최후에 닥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셉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것이었다. 요셉은 왜 자신이 지금 살아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조선이나 일본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리석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한 번은 한수가 점심을 먹으면서 좌파들은 '징징거리는 인간들'이고 우파들은 '완전 바보들'이라고 말했다."

 

 

"병 때문에 사람이 변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자 진심이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감추어왔던 진심이 터져 나온 것이다. 선자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들의 종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선인의 피에는 분노와 화가 너무 많이 담겨 있다고 일본인들은 말했다. 종자가 어떻고, 피가 어떻고 하는 그런 절망적인 생각에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노아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고, 모든 규칙을 지키며 최고가 되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적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노아가 그런 잔인한 이상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둔 것이 선자의 실수였다. 그 때문에 노아가 죽었다."